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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안내
[공포소설][펌] 손 (8편/완결)
갱킹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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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3 16:27
화장실에서 현관까지는 불과 열 걸음 정도면 닿는 거리였다.
하지만 벽에 있는 ‘손’이 문제였다.
최단거리로 가려면 벽에 붙어야 되는데,
그러다간 ‘손’에게 잡힐게 뻔했다.
결국 손의 사정범위를 최대한 계산해서라도 안쪽으로 빙 돌아 나가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거리는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더군다나 천장에 있는 손도 무시할 수 없었다.
“내 말 잘 들어. 허리를 최대한 굽히고 걸어야 해. 길이를 숨기고 있을 지도 몰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간과의 대가는 화장실에서 톡톡히 당한바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최대한 벽에서 떨어져서 걸어야 해. 빙 돈다고 생각하면서.”
내 말에 아내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꼭 여길 빠져 나가자”
말은 쉽게 했지만 무작정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바닥에 있는 ‘손’의 개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 뿐이지,
그 자체로만 보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싱크대의 아랫부분과,
그 바로 앞에 있는 식탁,
그리고 싱크대 오른 쪽 끝에 위치한 냉장고 주변에 손 분포가 높았다.
“주희야 잘 들어. 저 식탁, 싱크대, 냉장고 밑에 손이 제일 많거든? 저곳들만 잘 피하면 될 것 같아.”
듬성듬성 솟아 있는데다가 특정 공간에 밀집 되어 있기 때문에,
잘만 피해가면 소수의 ‘손’만 상대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손의 길이가 어느 정도까지 늘어날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식탁과, 냉장고, 싱크대에서 최대한 거리를 두고,
뒤집어진 ‘3’의 형태로 방을 걷는다면 현관 까지는 약 이십에서 이십오 걸음 정도.
여러 가지 돌발 상황을 가정해도 삼십 걸음 안에는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내는 심각한 표정으로 앞을 보고 있었다.
살며시 아내의 어깨위로 손을 얹는다.
“일단 뜨거운 맛 좀 보여줘야겠지?”
이상적인 루트라면 우리와 마주칠 ‘손’의 수는,
숨겨진 길이를 감안해도 5개 정도였다.
저 ‘손’들에 약하게나마 불을 붙여 놓으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일 뚜껑을 열고 통을 한 번 흔들어본다.
그리고 바닥을 향해 팔을 휘두르려는 순간,
“잠깐만.”
아내가 내 손을 붙잡았다.
시선은 여전히 앞을 향한 채로였다.
“응? 왜?”
“뿌린 다음에 불은 어떻게 붙이려고?”
“그거야 라이터로...”
나는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손가락 마디만한 불줄기를 오일이 묻은 부위에 일일이 갖다 대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다 내가 먼저 '손'에게 당할 게 뻔했다.
“아.. 라이터로 불붙이는 게 힘들겠구나.”
“응. 그리고 베이비오일이라 그런지 불도 그렇게 잘 붙지가 않더라고.”
“그렇다면 가연성도 떨어진다는 말이네...”
오일에 관한 것만큼은 아내의 의견을 따라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손’과 문에 불을 붙여봤던 경험자니까.
“자기, 상의 좀 벗어봐”
“으, 응? 아...그래 알았어”
얼떨결에 대답하고 옷을 벗어 아내에게 건 낸다.
물과 피에 절어,
옷이라기보다는 수건에 가까웠다.
아내는 내 상의를 손에 쥐고 이리 저리살피다가 끝부분만 돌돌 말기 시작했다.
양 손으로, 말린 부분을 몇 초간 꾹 눌렀다가 떼고는,
말린 부분이 돌출 되도록 옷의 끝자락을 붙잡고,
채찍 치듯 팔을 휘두른다.
축축한 옷이 바닥을 때리니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물기가 튀어 오른다.
“불이 잘 붙을지 모르겠네. 자기야 오일.”
멍하니 아내를 바라보다가,
“어? 어 그래 여기 있어 오일.”
순간 흠칫하며 반응하는 나.
아내가 방금 전까지와 갑자기 달라진 느낌이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침착하게 ‘손’과의 대적을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저...기 근데 주희야. 겁나지 않아? 괜찮아?”
아내는 잠시 나를 보며 살짝 미소 짓는다.
“겁나고 두려워. 그런데 조금 흥분돼.”
흥분이라.
다양한 종류의 흥분이 있다.
화남, 기쁨, 슬픔, 즐거움.
지금 아내가 말 하는 흥분은 어떤 종류의 흥분을 말 하는 걸까.
아내는 말을 마치고 뚜껑이 열린 오일 통을 옷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집중하는 눈빛으로 최대한 가느다란 줄기를 만들며 동그랗게 말린 부분을 적시기 시작했다.
“흥분 된다는 게 무슨 말이야?”
아내는 말없이 옷을 적시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괜찮은 거지? 아까 전에 ‘손’한테 잡히면서 무슨 일 없던 거지?”
아내의 발목에 찍혀있던 ‘손’자국이 떠올랐다.
그리고 민혁이 당한 의문의 폭발도 떠올랐다.
“그냥 그런 거 잊잖아. 묘한 기대감이라고 할까? 우리 결혼하고 많이 싸웠는데 이렇게나마 서로의 소중함
도 느끼고 말이야.”
나도 ‘손’에게 수차례나 당했지만 아직까지 별 이상은 없었다.
괜한 생각이었을까.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없어지진 않았다.
“자기야 여기 불 좀 붙여줘.”
아내가 오일로 적신 둥근 부분을 나에게 들이댄다.
“어? 어어. 그래 잠깐만.”
-찰칵
-취이이.....화륵, 화르륵
불이 붙는 텀이 약간 있었지만 명색이 오일답게 이내 커다란 불덩이가 생겼다.
“주희야. 위험하니까 그거 이제 나한테 줘.”
아내는 대답 없이 옷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아 위, 위험...”
“자기야! 오일 뿌려!”
아내가 오일을 건 내며 소리쳤다.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서둘러 오일을 돌려받았다.
그리고는 비스듬히 기울여 최대한 곳곳에 닿을 수 있게 흩뿌렸다.
-촤아아아
오일이 닿을 때마다 ‘손’들이 마치 살아있는 생선처럼 꿈틀 거린다.
나는 그렇게 남은 양의 반 정도를 뿌렸다.
“이정도면 됐겠지! 주희야 그거 나한테 줘! 어서!”
“내 뒤로 물러서!”
아내는 짧은 외침과 함께,
내 상의로 만든 불 채찍을 바닥에 휘두르기 시작한다.
-철썩, 화르륵!
방 곳곳 흩뿌려진 오일마다 차례로 불이 붙기 시작한다.
“물기가 없어서 그런지 아까보다 불이 더 잘 붙네!”
아내가 계속 팔을 휘두르며 말 했다.
불은 ‘손’들에게 생각 이상으로 효과적인 모양이었다.
제대로 불이 붙은 ‘손’ 몇 몇은,
엄청난 속도로 부르르 떨면서 그 고통스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염산보다 훨씬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자기야 오일을 조금만 더 뿌려봐. 잘 하면 이것만으로도 몰살시킬 수 있겠어.”
아내의 목소리에 말 그대로의 흥분이 느껴졌다.
“어? 그, 그래 알았어. 조, 조금 더 뿌리자.”
정신없이 팔을 휘두르는 아내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입 꼬리가 약간 들려있는 게 보인다.
난 아내가 말한 흥분의 정체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촤아아아아
이번에는 우리가 가야할 루트를 중심으로 오일을 뿌렸다.
“자기야. 거긴 별로 없잖아. 벽이나 천장 쪽으로 뿌리라고.”
“응? 무슨 소리야. 지금 여기 있는 ‘손’ 전체를 다 상대하겠다는 거야?”
“내가 아까 말했잖아. 이것만으로도 몰살시킬 수 있겠다고. 어서 뿌려. 불 꺼지겠다.”
아내의 이마에서 땀이 송글 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내가 바란 것은 탈출로의 확보였다.
그런데 아내는 온 사방에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더 멀리까지 닿게 하기 위해 점점 앞으로 걸음을 떼고 있었는데,
‘손’들이 아내의 발을 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집은 불바다가 되고, 아내까지 붙잡힐 지경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아내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만둬! 지금 집 전체를 태워버릴 셈이야? 우리도 못 나간다고 그럼!”
아내는 들은 척도 안하고 계속 팔을 움직였다.
“그만! 이제 충분해!”
휘두르는 아내의 팔을 움켜잡았다.
가냘픈 팔에 애처로운 힘줄이 느껴진다.
“주희야. 내 말 들어. 이 손 놔!”
나는 다급하게 아내의 손에서 옷을 빼앗았다.
그리고 바닥에 던진 채 맨발인 것도 잊고 옷을 밟기 시작했다.
발바닥이 불에 타들어가는 느낌.
하지만 나는 꺼질 때까지 밟고 또 밟았다.
“하아..하아...”
아내의 격해진 숨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아내의 허리를 팔로 감은 상태로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으로 붙은 불이 점점 집안 전체로 번지고 있었다.
이러다간 ‘손’때문이 아니라 불 때문에 죽을 판국이었다.
하지만 불에 데여 화상을 입더라도 나갈 기회는 지금 뿐이었다.
다행히 적어도 우리가 상대할 ‘손’들에는 모두 불이 붙어 있었다.
“주희야. 지금이야 어서 가자!”
“.......”
“주희야? 안 들려?”
갑자기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아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 순간 할 말을 잊고 만다.
왜냐하면,
아내의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벽에 있는 ‘손’이 문제였다.
최단거리로 가려면 벽에 붙어야 되는데,
그러다간 ‘손’에게 잡힐게 뻔했다.
결국 손의 사정범위를 최대한 계산해서라도 안쪽으로 빙 돌아 나가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거리는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더군다나 천장에 있는 손도 무시할 수 없었다.
“내 말 잘 들어. 허리를 최대한 굽히고 걸어야 해. 길이를 숨기고 있을 지도 몰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간과의 대가는 화장실에서 톡톡히 당한바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최대한 벽에서 떨어져서 걸어야 해. 빙 돈다고 생각하면서.”
내 말에 아내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꼭 여길 빠져 나가자”
말은 쉽게 했지만 무작정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바닥에 있는 ‘손’의 개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 뿐이지,
그 자체로만 보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싱크대의 아랫부분과,
그 바로 앞에 있는 식탁,
그리고 싱크대 오른 쪽 끝에 위치한 냉장고 주변에 손 분포가 높았다.
“주희야 잘 들어. 저 식탁, 싱크대, 냉장고 밑에 손이 제일 많거든? 저곳들만 잘 피하면 될 것 같아.”
듬성듬성 솟아 있는데다가 특정 공간에 밀집 되어 있기 때문에,
잘만 피해가면 소수의 ‘손’만 상대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손의 길이가 어느 정도까지 늘어날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식탁과, 냉장고, 싱크대에서 최대한 거리를 두고,
뒤집어진 ‘3’의 형태로 방을 걷는다면 현관 까지는 약 이십에서 이십오 걸음 정도.
여러 가지 돌발 상황을 가정해도 삼십 걸음 안에는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내는 심각한 표정으로 앞을 보고 있었다.
살며시 아내의 어깨위로 손을 얹는다.
“일단 뜨거운 맛 좀 보여줘야겠지?”
이상적인 루트라면 우리와 마주칠 ‘손’의 수는,
숨겨진 길이를 감안해도 5개 정도였다.
저 ‘손’들에 약하게나마 불을 붙여 놓으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일 뚜껑을 열고 통을 한 번 흔들어본다.
그리고 바닥을 향해 팔을 휘두르려는 순간,
“잠깐만.”
아내가 내 손을 붙잡았다.
시선은 여전히 앞을 향한 채로였다.
“응? 왜?”
“뿌린 다음에 불은 어떻게 붙이려고?”
“그거야 라이터로...”
나는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손가락 마디만한 불줄기를 오일이 묻은 부위에 일일이 갖다 대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다 내가 먼저 '손'에게 당할 게 뻔했다.
“아.. 라이터로 불붙이는 게 힘들겠구나.”
“응. 그리고 베이비오일이라 그런지 불도 그렇게 잘 붙지가 않더라고.”
“그렇다면 가연성도 떨어진다는 말이네...”
오일에 관한 것만큼은 아내의 의견을 따라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손’과 문에 불을 붙여봤던 경험자니까.
“자기, 상의 좀 벗어봐”
“으, 응? 아...그래 알았어”
얼떨결에 대답하고 옷을 벗어 아내에게 건 낸다.
물과 피에 절어,
옷이라기보다는 수건에 가까웠다.
아내는 내 상의를 손에 쥐고 이리 저리살피다가 끝부분만 돌돌 말기 시작했다.
양 손으로, 말린 부분을 몇 초간 꾹 눌렀다가 떼고는,
말린 부분이 돌출 되도록 옷의 끝자락을 붙잡고,
채찍 치듯 팔을 휘두른다.
축축한 옷이 바닥을 때리니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물기가 튀어 오른다.
“불이 잘 붙을지 모르겠네. 자기야 오일.”
멍하니 아내를 바라보다가,
“어? 어 그래 여기 있어 오일.”
순간 흠칫하며 반응하는 나.
아내가 방금 전까지와 갑자기 달라진 느낌이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침착하게 ‘손’과의 대적을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저...기 근데 주희야. 겁나지 않아? 괜찮아?”
아내는 잠시 나를 보며 살짝 미소 짓는다.
“겁나고 두려워. 그런데 조금 흥분돼.”
흥분이라.
다양한 종류의 흥분이 있다.
화남, 기쁨, 슬픔, 즐거움.
지금 아내가 말 하는 흥분은 어떤 종류의 흥분을 말 하는 걸까.
아내는 말을 마치고 뚜껑이 열린 오일 통을 옷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집중하는 눈빛으로 최대한 가느다란 줄기를 만들며 동그랗게 말린 부분을 적시기 시작했다.
“흥분 된다는 게 무슨 말이야?”
아내는 말없이 옷을 적시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괜찮은 거지? 아까 전에 ‘손’한테 잡히면서 무슨 일 없던 거지?”
아내의 발목에 찍혀있던 ‘손’자국이 떠올랐다.
그리고 민혁이 당한 의문의 폭발도 떠올랐다.
“그냥 그런 거 잊잖아. 묘한 기대감이라고 할까? 우리 결혼하고 많이 싸웠는데 이렇게나마 서로의 소중함
도 느끼고 말이야.”
나도 ‘손’에게 수차례나 당했지만 아직까지 별 이상은 없었다.
괜한 생각이었을까.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없어지진 않았다.
“자기야 여기 불 좀 붙여줘.”
아내가 오일로 적신 둥근 부분을 나에게 들이댄다.
“어? 어어. 그래 잠깐만.”
-찰칵
-취이이.....화륵, 화르륵
불이 붙는 텀이 약간 있었지만 명색이 오일답게 이내 커다란 불덩이가 생겼다.
“주희야. 위험하니까 그거 이제 나한테 줘.”
아내는 대답 없이 옷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아 위, 위험...”
“자기야! 오일 뿌려!”
아내가 오일을 건 내며 소리쳤다.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서둘러 오일을 돌려받았다.
그리고는 비스듬히 기울여 최대한 곳곳에 닿을 수 있게 흩뿌렸다.
-촤아아아
오일이 닿을 때마다 ‘손’들이 마치 살아있는 생선처럼 꿈틀 거린다.
나는 그렇게 남은 양의 반 정도를 뿌렸다.
“이정도면 됐겠지! 주희야 그거 나한테 줘! 어서!”
“내 뒤로 물러서!”
아내는 짧은 외침과 함께,
내 상의로 만든 불 채찍을 바닥에 휘두르기 시작한다.
-철썩, 화르륵!
방 곳곳 흩뿌려진 오일마다 차례로 불이 붙기 시작한다.
“물기가 없어서 그런지 아까보다 불이 더 잘 붙네!”
아내가 계속 팔을 휘두르며 말 했다.
불은 ‘손’들에게 생각 이상으로 효과적인 모양이었다.
제대로 불이 붙은 ‘손’ 몇 몇은,
엄청난 속도로 부르르 떨면서 그 고통스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염산보다 훨씬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자기야 오일을 조금만 더 뿌려봐. 잘 하면 이것만으로도 몰살시킬 수 있겠어.”
아내의 목소리에 말 그대로의 흥분이 느껴졌다.
“어? 그, 그래 알았어. 조, 조금 더 뿌리자.”
정신없이 팔을 휘두르는 아내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입 꼬리가 약간 들려있는 게 보인다.
난 아내가 말한 흥분의 정체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촤아아아아
이번에는 우리가 가야할 루트를 중심으로 오일을 뿌렸다.
“자기야. 거긴 별로 없잖아. 벽이나 천장 쪽으로 뿌리라고.”
“응? 무슨 소리야. 지금 여기 있는 ‘손’ 전체를 다 상대하겠다는 거야?”
“내가 아까 말했잖아. 이것만으로도 몰살시킬 수 있겠다고. 어서 뿌려. 불 꺼지겠다.”
아내의 이마에서 땀이 송글 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내가 바란 것은 탈출로의 확보였다.
그런데 아내는 온 사방에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더 멀리까지 닿게 하기 위해 점점 앞으로 걸음을 떼고 있었는데,
‘손’들이 아내의 발을 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집은 불바다가 되고, 아내까지 붙잡힐 지경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아내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만둬! 지금 집 전체를 태워버릴 셈이야? 우리도 못 나간다고 그럼!”
아내는 들은 척도 안하고 계속 팔을 움직였다.
“그만! 이제 충분해!”
휘두르는 아내의 팔을 움켜잡았다.
가냘픈 팔에 애처로운 힘줄이 느껴진다.
“주희야. 내 말 들어. 이 손 놔!”
나는 다급하게 아내의 손에서 옷을 빼앗았다.
그리고 바닥에 던진 채 맨발인 것도 잊고 옷을 밟기 시작했다.
발바닥이 불에 타들어가는 느낌.
하지만 나는 꺼질 때까지 밟고 또 밟았다.
“하아..하아...”
아내의 격해진 숨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아내의 허리를 팔로 감은 상태로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으로 붙은 불이 점점 집안 전체로 번지고 있었다.
이러다간 ‘손’때문이 아니라 불 때문에 죽을 판국이었다.
하지만 불에 데여 화상을 입더라도 나갈 기회는 지금 뿐이었다.
다행히 적어도 우리가 상대할 ‘손’들에는 모두 불이 붙어 있었다.
“주희야. 지금이야 어서 가자!”
“.......”
“주희야? 안 들려?”
갑자기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아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 순간 할 말을 잊고 만다.
왜냐하면,
아내의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기 때문이다.
한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주... 주희야! 정신 차려! 주, 주희야!”
아내는 퉁퉁 부운 얼굴로 멍 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내를 붙잡고 계속 흔드는 수밖에 없었다.
“정신차려!! 제발!!”
순간 아내의 눈이 살짝 떨려온다.
“어... 어? 나 잠깐 정신이 없었나 봐.”
아내의 정신이 돌아온 것 같았다.
“괜찮아? 이리와. 등에 업혀.”
나는 아내를 향해 등을 보이며 쭈그려 앉았다.
“아, 아니야. 나를 업고 여길 어떻게 나가려고 그래. 내가 조금 어떻게 됐었나봐. 괜찮아.”
아내가 잠깐씩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얘기를 마쳤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불은 삽시간에 번지고 있었고,
이미 ‘손’ 이상으로 무서워진 상태였다.
“어서 가자. 내 손 잡아!”
아내의 손을 잡고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
허리를 굽히고 뛰기 시작했다.
-콰아아악
거실 한 가운데,
그러니까 현관까지는 반 정도 남은 거리에서 ‘손’에게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주희야! 밟아!”
나는 남은 한 발로, 아내는 두 발로,
내 발목을 잡은 ‘손’을 밟기 시작했다.
이미 새카맣게 타 올라 쥐는 힘부터가 영 아니었다.
-콱 콱 콱 콱!
하지만 힘을 잃어도 역시 ‘손’은 ‘손’,
있는 힘을 다해 몇 번이나 밟았는데 이제야 손가락이 조금씩 들리는 정도였다.
그리고 이 시간에도 불은 점점 번지고 있었다.
“제기랄... 놔! 죽어! 씨팔!!”
그렇게 한참을 밟자,
-파악
순간적으로 발목을 잡은 ‘손’이 파악 하고 펴졌다.
붙잡힌 발목 언저리가 욱신 거려온다.
하지만 뛰어야했다.
“놨어! 뛰어 뛰어!!”
다행인건,
불에 타던 ‘손’들이 하나, 둘씩 픽픽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고,
큰일인건,
불이 현관까지 번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콰아
현관 바로 앞에서 ‘손’에 또 발목을 잡힌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약한 악력.
“놔! 놓으라고!!”
나는 잡힌 발을 마구 흔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손’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내 발목을 놓고 만다.
“주희야, 주희야! 다왔어! 다왔다구! 주희야?”
아내가 또 대답이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보다 훨씬 얼굴이 부은 아내가 눈을 감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불길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머뭇거릴 틈이 없다.
급하게 현관 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앗 뜨거!!!!”
엄청난 뜨거움.
쇠로 된 손잡이가 불에 달궈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것만 돌리면,
이것만 돌리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나는 다시 한 번 손잡이를 붙잡았다.
“으아아아악!!! 씨팔!!!!!!”
손잡이를 붙잡은 내 손에서 ‘치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흰 연기가 나온다.
3도화상 정도는 각오해야 하겠지.
조금씩 손잡이가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극심한 통증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끼이이익
“됐어! 됐어!! 제기랄! 나갈 수 있어!”
그 순간,
-콰아아악!
손에게 붙잡혔다.
놀랍게도 이번엔 머리였다.
잠시 손잡이에만 정신이 팔려 허리를 굽혀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었다.
더군다나 천장의 ‘손’은 아직도 쌩쌩했는지 쥐는 힘이 굉장했다.
나는 조금씩 몸이 들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 해 문을 밀었다.
-끼익
아주 조금,
문이 열렸다.
“끄아아아아, 주희야! 으아악! 주희야! 너라도 나가! 어서!”
하지만 아내는 움직이지 않았다.
퉁퉁 부은 얼굴로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극심한 통증으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차츰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활활 거리는 불 소리만 귀에 박히기 시작한다.
-화르륵
..........
..........
“으아아아악!!”
정신이 들었다.
잠시 멍 하니 앞을 바라보는 나.
“여긴... 어디지?”
-뚜...뚜...뚜
일정한 기계음.
마치 심박을 제고 있는 것 같은데.
고개를 왼 쪽으로 돌리니 역시 심박기가 있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내 몸을 살펴보았다.
익숙한 하얀 옷.
그리고 오른 손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병원, 병원인가? 윽, 으으윽.”
갑자기 온 몸이 아파온다.
극심한 통증이었다.
다급하게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 정신이 좀 드셨..? 아! 김간호사 진통제 가져와!”
흰 가운을 입은 단발머리의 여의사였다.
진통제를 받고는 내 팔에 주사를 놓는다.
“윽”
순간적인 따가움.
하지만 온 몸을 지배하던 통증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내.. 내가 어떻게 된 거요?”
차트를 넘기던 의사가 고개를 갸웃 거리고 있었다.
“음... 이상하단 말이야. 화상만 입어야 정상인데...”
의사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차트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이봐요. 대답 좀 해줘요.”
“아. 환자분 거의 하루 종일 누워 계셨어요. 오전에 병원에 오셨는데. 보세요. 지금 컴컴하죠?”
“아, 아니. 그런데 어떻게 내가 병원에...”
“뭐 구사일생이었죠. 조금만 늦었으면 두 분 다 화재로 돌아가실 뻔 하셨어요. 소방대원들한테 감사할
일이죠.”
두 분이란 것은,
“아! 제 아내, 제 아내는 어떻게 됐죠?”
“걱정 마세요. 아내는 무사하니까요.”
“무사하다고요? 얼굴, 얼굴은 괜찮습니까? 퉁퉁 붓지 않았어요?”
의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예, 심각한 건 아니었어요. 붓기도 많이 빠졌답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의사는 나를 향해 살짝 미소 짓고는 몸을 돌려 간호사를 바라본다
“저 분 상태가 많이 안 좋은 편이니까 잠시 여기 있으면서 체크 계속해줘.”
“예 그럴게요.”
“저 그럼 나가볼게요. 필요한 일 있으면 간호사한테 말씀 하시구요.”
의사가 문을 열고 나갔다.
살짝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나 말고도 여러 환자들이 더 있었는데 하나같이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큰일 날 뻔 하셨어요. 아내 분 홀몸도 아니시던데.”
잠시 멍하니 주위를 살피다가 간호사의 말에 고개를 돌린다.
백의의 천사답게 환한 미소가 눈에 띄었다.
“저... 여기가 몇 호실인가요?”
“아 여기는 527호에요.”
“제 아내는, 아내는 어디에 있죠?”
“부인 분께서는 508호에 있답니다. 주무시고 계세요. 지금 시간이 벌써 새벽 2시네요.”
그 말을 하면서 간호사도 피곤했는지 눈가를 손으로 비비기 시작했다.
“제 아내가 임신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에이 딱 보면 알죠. 아기가 어찌나 발로 차던지. 아주 건강한 아기가 나올 것...”
“....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간호사도 나의 되물음이 의아했는지 웃는 얼굴로 고개만 갸웃하고 있었다.
“지금 발로 찼다고 했습니까?”
“예? 아아. 부인 분 배 안 만져 보셨어요? 후훗 임신 5개월쯤 넘으면 배에서 아기가 움직이는 게 느껴지거
든요. 그걸 발로 찬다고 말 하는 거에요.”
머리가 띵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아내는 아직 임신한지 1개월도 안 됐는데!”
내 말을 들은 간호사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거의 만삭은 돼 보였는데요? 그럴 리가...”
-덜컥! 쿠웅!
거칠게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 간호사! 김 간호사!!”
아까 전의 그 의사였다.
“508호 김주희 환자. 어떻게 된 거야?”
아내의 이름이 들려왔다.
간호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무슨...일 있으세요? 지금 주무시고 계실 텐데.”
“환자가 사라졌어!”
“뭐라고요!?”
깜짝 놀란 간호사가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봐요! 지금 뭐라고 했소! 내 아내가 어떻게 된 거요!”
의사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 저기 별일 없을 거예요. 잠깐 병실을 비우셨는데 화장실이라도 가신 걸 거예요.”
애써 나를 안정시키려는 의사.
하지만 아니었다.
아내가 화장실로 간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당신들. 도망...가.”
“....예?”
“도망가라고! 아니, 어서 경찰에 신고해!”
의사가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저... 죄송합니다. 아내 분은 저희가 반드시 찾도록 할 테니까요. 걱정 마시고 누워 계세요.”
“그게 아니야. 어서 도망가라고! ‘손’이야 ‘손’이 나온 거라고!”
의사가 내 이마에 손을 올린다.
“열이 조금 있으세요. 걱정 마시고 누우세요. 아내 분 찾는 데로 저희가 말씀 드릴게요.”
말을 마치고 의사도 문 쪽으로 급하게 몸을 움직인다.
‘손’, ‘손’이 분명했다.
아내의 배를 뚫고 나온 손이 아내를 끌고 병실을 나간 게 틀림없었다.
-덜컥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짜릿한 통증이 온 몸에 느껴진다.
“씨팔. 망할 놈의 ‘손’이 끝까지 고생시키는구나.”
오른팔에 꽂혀있는 링겔 바늘을 빼고,
가볍게 심호흡을 한번 한 후,
비틀 비틀 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바닥에서 의사가 달리다 떨어뜨린 메스를 주웠다.
-꺄아아아악!
문 밖으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무거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왜 나만 ‘손’에게 당하고 멀쩡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문손잡이를 잡은 순간,
그런 생각은 잠시 젖혀 두기로 했다.
-타닥 타다다닥
-으악 으아아악!!
익숙한 소리들.
문이 열리면 난 또다시 전쟁을 시작해야한다.
지긋지긋한 ‘손’과의 전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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